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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인명사전] 휴대폰의 창시자 마틴 쿠퍼

TECH/반도체 Story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신인류를 우리는 호모 모빌리언스(Homo Mobilians)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신인류의 기원이 되는 휴대 기기는 과연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발명된 것일까요? 그리고 그 첫 통화는 어땠을까요? 최초의 호모 모빌리언스는 바로 오늘의 주인공 마틴 쿠퍼(Martin Cooper)입니다. 그는 당시 모토로라의 선임연구원이었는데요. 43년 전 커다란 휴대전화를 통해 첫 통화에 성공한 그와 최초의 휴대전화 이야기, 함께 살펴볼까요?

 

 

 

 

 

지금으로부터 43년 전 4월 3일.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위치한 힐튼호텔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습니다. 그는 벽돌같이 크고 둔탁하게 생긴 전화기를 들고 있죠. 마침내 남자는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번호를 누르고 연결 버튼을 누릅니다. 이내 전화기의 안테나에서는 한 줄기의 전파가 발사되는데요. 이 전파는 인근 50층짜리 건물로 곧장 날아가 건물 옥상 기지국에 당도합니다. 여러 장비를 거친 전파는 일반 유선 전화망에 올라타 뉴저지 주에 있는 미국 통신회사 AT&T 벨연구소에 당도하게 되죠. 그리고 한 연구원의 책상 위 유선 전화기에서 울리는 벨 소리. 맨해튼에서 벨연구소까지 37km라는 먼 거리가 전파를 통해 순식간에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조엘. 나야, 마틴. 나는 지금 휴대전화로 자네에게 전화하고 있어.

맨해튼 거리에서 휴대전화로 말이야.”

 

 

 

▲ (좌측부터) 최초의 휴대전화 통화를 시도한 마틴 쿠퍼와 그 전화를 받은 벨연구소의 조엘 엥겔
출처 :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gov), 미국공학한림원(nae.edu)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마틴 쿠퍼였습니다. 그는 1928년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우연히도 이 해는 모토로라가 시카고에 터를 잡고, 자동차 라디오를 만드는 회사로 창업한 해이기도 한데요. 1946년 이 지역 명문대 일리노이공대(IIT)에 입학한 그는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1950년 미 해군에 입대합니다. 이후 곧바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는 3년 정도 우리나라에 머문 바 있습니다. 유명한 맥아더 장군 산하에서 구축함 장교를 역임하기도 했고 잠수함 부대에서도 근무했던 그는 주로 서해에서 북한군이 만들어놓은 해안 철도를 파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하죠.

 

1953년 제대 후에는 텔레타이프(Teletype)라는 통신기기 제조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마틴 쿠퍼는 모토로라로 직장을 옮겨가는데요. 처음에는 트랜지스터 등을 만드는 반도체 팀에 배정되었다가, 1955년 무전기 개발팀으로 옮기면서 마침내 무선통신에 첫발을 들이게 됩니다. 당시 모토로라는 이미 세계 2차 대전 때 휴대용 핸디토키(handie-talkie), 워키토키(walkie-talkie) 등을 개발할 만큼 무선통신 전문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또한, 무선 통화가 가능한 카폰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이미 나와 있었고 최대의 전화 회사인 AT&T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죠. 1946년 처음 개발된 카폰은 차량에서 발전되는 전기를 쓰고 무게는 40kg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 자동차에 설치된 카폰
출처 : 플리커 (flickr.com)

 

 

이러한 당시 상황에서 마틴 쿠퍼는 TV 시리즈 ‘스타트랙’을 보다가 휴대용 통신기를 사용하는 커크 함장을 보고 영감을 얻게 됩니다. ‘사람은 돌아다니므로 개인용 전화기를 원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죠. 그는 휴대폰 발명 후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집과 사무실, 차 안에서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모든 곳에서 전화하길 원했다”며 “구리선에서 벗어나 원하는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통화하는 건 진정한 자유였고 우리는 그 자유를 1973년 목격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당시 벨연구소는 ‘셀룰러 테크놀러지’라고 불리는 무선통신기술을 처음 개발했지만, 이를 카폰에만 적용한 반면 마틴 쿠퍼는 누구나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상상한 것인데요. 이 작은 생각의 차이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셈이죠.

 

 

 

 

 

 

 

당시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는 세계 최대 통신기업인 AT&T에 독점적인 전파사용권을 주려 하고 있었습니다. AT&T는 미국 전역에서 셀룰러 네트워크(cellular networks)를 운영할 수 있는 기술은 자사만이 갖고 있다며 FCC에 끈질기게 주장했는데요. 기지국을 중심으로 수많은 주파수를 재사용하는 셀룰러 네트워크의 개념은 1947년 AT&T 벨연구소가 처음 고안해낸 것입니다. 지금의 휴대전화가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죠. 1970년대 초반 AT&T는 무선통신 분야의 각종 특허를 독차지하던 회사였고 셀룰러 네트워크를 사용한 카폰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쿠퍼가 생각해낸 방법은 모토로라가 먼저 휴대전화의 실현 가능성을 증명함으로써, 독점권을 AT&T에게 주겠다는 FCC의 계획을 저지하는 것이었습니다.

 

 

 

▲ 최초의 휴대폰 ‘다이나택(DynaTAC) 8000X’
출처 : 위키디피아

 

 

마틴 쿠퍼는 즉시 카폰 대신 더 작고 더 가벼운 ‘들고 다니는 전화’ 개발에 매진했고 ‘라디오 전화 시스템’이라는 특허를 얻어냈습니다. 하지만 ‘벽돌폰’이라 불리던 최초 휴대폰 ‘다이나택(DynaTAC) 8000X’는 무게가 무려 1.13㎏에 길이 22.8㎝, 폭 4.5㎝에 두께가 12.7㎝에 달해서 오래 통화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배터리였는데 10시간을 충전하면 30분을 통화하는 게 고작이었다고 하죠. 일반인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기까지는 그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10여 년 동안의 각고의 노력 끝에 모토로라는 1983년 최초의 상용 휴대전화 ‘다이나택 8000X’을 내놓았습니다. 가격은 3,995달러, 지금 화폐가치로 따지면 9,388달러(약 1,000만 원)였습니다. 하지만 이듬해가 되자 가격은 1,000달러대로 내려갔습니다. 또 서비스 가능 지역이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사용자는 1984년 9만 명, 1985년 20만 명으로 늘었고 1988년에는 150만 명까지 확대됐죠. 

 

 

 

출처 : 위키디피아

 

 

쿠퍼는 부사장으로 제품개발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그동안 9,000만 달러가 투입됐고 상용화가 늦어지면서 회사 내에 비난 여론이 일었지만, 그는 묵묵히 개발에 매달렸는데요. 그는 “막대한 비용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회사 경영진 중 강력한 지지자가 있어 상용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다이나택이 세상에 나오기 직전 회사를 떠나 본격적인 창업가 길을 걸었습니다. 1983년 셀룰러 기술을 이용한 결제 서비스 기업 ‘셀룰러 비즈니스 시스템즈’를 창업했고 시장점유율은 75%에 이르렀죠. 1986년 2,300만 달러(약 247억 원)에 회사를 매각한 후 이동통신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1992년 무선통신 다중 안테나 신호 처리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어레이컴을 설립해 현재까지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휴대폰 개발에도 지속 참여해 2006년 삼성전자와 함께 실버폰 ‘지터벅’을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쿠퍼는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직도 두 달에 한 번씩 휴대폰을 교체한다고 합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휴대폰은 지난 시간 동안 벽돌만 한 크기에서 담뱃갑보다 작은 크기로 줄어들었고, 전 세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30억 명이 휴대폰을 지니고 다닙니다. 누구나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상상했던 마틴 쿠퍼의 꿈이 현실화된 것인데요. 마틴 쿠퍼는 2000년 초 이렇게 예언했는데 그것도 현실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전화기를 가지고 어디로든 가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처럼

인터넷을 사용하는 방법도 무선으로 이뤄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면, 그건 혁명일 겁니다.”

 

이제 휴대폰의 기능은 전화를 걸고 받는 데에서 진화해 게임, 카메라, 음악 플레이어, TV 기능은 물론 무선인터넷 접속으로 위치추적, 교통요금 결제, 신용카드 서비스, 모바일 경호, 전자상거래, 동영상 보기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복합 기기로 진화했습니다.

 

 

 

 

올해 한국 나이로 89세지만, 대단한 노익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백발이 성성해도 일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는데요. 쿠퍼는 휴대폰 40주년을 맞아 2013년 진행된 인터뷰에서 “나의 인생에 은퇴란 없다”며 “일과 성취가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마틴 쿠퍼가 전망하는 미래의 휴대폰은 ‘사람 귀 안에 심는 전화기’입니다. 그가 말하는 미래의 휴대폰은 인간의 몸과 하나 되는 기계인데요. 몸에 심는 휴대폰은 기능이 여러 가지입니다. 가령 건강과 관련해서는 휴대전화가 실시간으로 맥박, 체온, 혈압을 측정해주고 질병 예측 기능을 해서 건강검진은 쓸모없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죠. 결제수단으로도 활용되어서 현금이나 카드 없이 몸속 휴대폰만으로도 경제활동을 불편 없이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가 예측한 대로 이제 더 이상 휴대폰은 전화기가 아닌 셈입니다.

 

 

 

 

 

기존의 생각을 살짝 비튼 발상의 전환으로 이동하면서 통화가 가능한 휴대전화를 개발한 마틴 쿠퍼는 모두가 불가능을 예측했을 때, 수많은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오롯이 걸어 마침내 최초의 호모 모빌리언스로 남았습니다. 이러한 혁혁한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여전히 현역에서 활동하며, 모바일 시대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백전노장. 지금의 마틴 쿠퍼에게 딱 맞는 수식어가 아닐까 싶은데요. 혁신적인 생각과 이를 실행하는 행동력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열정이 지금의 휴대폰을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가 예측한 모바일 시대가 앞으로 또 어떠한 진화를 거듭할지 무척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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